766억 기부한 그룹 회장이 1만원짜리 옷 입고 다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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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 766억원 기부한 이수영 회장의 신조

자신을 두르는 옷과 보석보다 자신의 시간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걸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광원산업의 이수영 회장인데요.

어마어마한 돈을 기부하고도 단돈 1만원짜리 옷을 입고 다닌다는 그녀의 삶을 알아봤습니다.

지난달 29일 TV조선 ‘와카남(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에는 광원산업의 이수영 회장이 출연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이수영 회장의 자택도 공개됐는데요. 재밌는 점은 문 앞에 잔뜩 쌓인 택배 상자들이었습니다.

현관문을 제대로 열지 못할 정도로 쌓인 택배에 이수영 회장은 평소 홈쇼핑을 즐긴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이수영 회장은 “이 늙은이가 백화점에 가서 옷 하나 사려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시간 낭비를 하냐”라고 설명했죠.

그러면서 “시간이 나한테 얼마나 귀한 건데… 난 주로 1만원짜리를 사서 입는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방송에 차고 나온 진주 목걸이 역시 가짜라고 당당하게 밝혔는데요.

엄청난 자산과 통 큰 기부를 보여준 이수영 회장의 반전 일상에 홍현희, 장영란 등 패널들은 크게 감탄했습니다.

이 같은 이수영 회장의 검소한 생활은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라는 삶의 철학에서 나온 건데요.

어마어마한 자산을 가진 이수영 회장은 어떻게 이런 철학을 갖게 된 걸까요.

1936년생인 이수영 회장은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순풍에 돛을 단 듯 수월히 이어지던 그녀의 삶에 사법시험 불합격은 큰 충격이었는데요.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영어학원 게시판에서 서울신문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안내문을 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서울신문에 입사한 그녀는 이후 현대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을 거치며 베테랑 기자로 자리매김합니다.

특히 기자 생활 당시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이병철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과 인연을 쌓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1980년 서울경제신문이 전두환 정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면서 17년간 이어진 그녀의 기자 생활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기자 재직 시절 주말농장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대출을 받아 목장을 시작하게 됐죠.

목장은 돼지 2마리가 1,000마리가 될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는데요.

여기에 이수영 회장은 전국에 분 건설 붐에 올라타 모래 채취 사업에도 손을 대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이수영 회장은 “내 인생의 황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래도 팔고 소도 파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라며 당시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여의도백화점 5층을 인수하게 된 그녀는 부동산 전문 기업 광원산업을 창업하면서 부동산 업자로 변신하게 되죠.

기자로, 또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이수영 회장은 지난 7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676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2012년부터 이어진 기부는 어느새 766억원을 돌파했죠.

여기에는 이수영 회장 어머니의 부지런하고 알뜰한 모습이 반영됐다는데요.

그녀는 “6.25전쟁 시절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떡 잘 먹었다’하고 인사를 하더라. 집에 와서 물었더니 전쟁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어머니가 ‘우리 딸이 떡을 나눠드리라 했다’라며 떡을 나눠드렸다더라”라고 설명했죠.

어머니는 자신이 받을 감사를 딸에게 돌렸고 이수영 회장은 어린 나이에 기부의 선한 영향력을 알게 된 거죠.

이렇게 바쁜 삶을 살다 보니 이수영 회장의 초혼은 82세에 성사됐는데요.

상대는 서울대 동기인 김창홍 변호사로, 친구들과의 골프 모임에서 골프가 서툰 그녀를 위해 김창홍 변호사가 도움을 주면서 친분을 쌓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됐죠.

한편 이수영 회장은 ‘이수영 과학교육재단’도 만들어 운영 중인데요.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전 재산을 기부하는 걸로 유언을 남긴 상태로, 그 기금으로 꼭 노벨상이 나오길 바란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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