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아야소피아

메르하바! 안녕하세요! 터키와 사랑에 빠진 Jackie 입니다! 지난 두 편의 글을 통해서 제가 터키에서 특별하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과 여러분들에게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음식들과 식문화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저도 글을 쓰는 내내 다시 돌아가서 먹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장소에서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곳을 일단은 가기 마련입니다. 혹은 가장 상징적인 곳을 정해서 약속 장소로 정하게 되죠. 우리는 그런 장소나 건물을 랜드마크라고 부릅니다. 특히 터키의 수도로도 오해되는 이스탄불은 엄청난 세월 동안 동양과 서양 간의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터키 역사,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이스탄불

그래서 이스탄불은 2010년 유럽 문화 수도로도 지정되었으며 구시가지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번 연재부터는 이스탄불 아니 터키의 랜드마크들을 탐험하고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져볼 텐데요 그 첫 번째는 아야소피아(Ayasofya)입니다!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곳을 중심으로 반대편에 있는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술탄아흐멧 모스크 등 구시가지의 여러 문화유산들을 관광할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본 아야소피아 사원

특히 최근에는 터키 건국 이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의 명령 아래 줄곧 박물관으로만 사용되었던 이곳을 현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이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서 다시 모스크로 용도변경을 강행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 양측에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로 바뀐 이곳은 여전히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관광객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모스크의 역할로 돌아온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의 랜드마크다

특히 천주교(정교회)와 이슬람 두 종교에서 모두 성지로 여기는 몇 안 되는 장소인데요, 원래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수도를 이전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2세의 명령으로 360년에 처음 지어진 첫 번째 아야 소피아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다시 재건을 시작한 사람은 바로 테오도시우스 2세였습니다. 415년에 성당을 새로 지었지만 채 150년을 버티지 못하고 532년 니카의 반란으로 또 한 번 무너지는 아픔이 있었죠.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당시에 황제였던 유스티아누스 1세입니다. 황제의 의욕은 대단했고 그 어떤 건축물도 따라올 수 없는 거대한 성당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물리학자와 수학자를 불러서 설계했으며 당시 상황으로 단 6년이라는 시간만을 사용하며 새로운 아야소피아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때 지어진 아야소피아가 현재 저희가 볼 수 있는 성당입니다.

6년 만에 지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웅장함이 있는 아야소피아

이름의 뜻을 풀어보면 그리스식 이름으로는 ‘하기아 소피아’로도 불리는데 거룩한 지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여기서 거룩한 지혜는 바로 성자 예수를 의미합니다.

이후 여러 번의 지진과 700년대의 성상을 파괴하는 운동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모자이크가 유실 혹은 파괴되었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슬람 세력 대신 뜬금없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제4차 십자군의 약탈로 성당이 소유한 수많은 보물들과 성유물들은 약탈당했습니다. 특히 4차 십자군은 그들의 수장이자 베네치아의 도제인 엔리코 단돌로(Henricus Dandolus)의 무덤을 만들어서 성당 2층에 안장시키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인페르노에서 주연인 톰 행크스가 엔리코 단돌로의 무덤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영화 ‘인페르노’에 등장하는 아야소피아 사원 / 출처 : 영화 인페르노 캡쳐

이러한 일련의 수난에도 아야소피아는 정교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1453년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는 선조들의 숙원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을 드디어 수중에 넣게 됩니다. 당시 메흐메트 2세는 승리의 기념으로 모든 약탈을 허용했지만 아야소피아의 약탈만은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했습니다. 아야소피아는 즉시 모스크로 그 용도가 변경되었으며 기독교 세력에 대한 이슬람의 승리를 기념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성화를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는 캘리그래피를 발전하게 만들었다

또한 성화를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 문화 특성상 이전에 있던 기독교 성화들은 모두 회칠로 덮였으며(이후 늦은 18세기까지도 일부 성화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모스크의 상징인 미나렛(첨탑)도 4개로 증축되었다고 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치세가 끝나고 현대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자 당시 지도자였던 케말 아타튀르크는 종교국가가 아닌 서양처럼 세속적인 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했는데요, 그의 정책을 상장하는 출발점이 바로 아야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이었죠. 심지어 그는 서양 학자들이 내부를 복구하는 요청에도 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스만 제국 시절 그려놓은 캘리그래피나 장식들 역시 500년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었던만큼 큰 반발에 이기지 못하고 복구를 중지했다고 합니다.

모스크로 용도변경 후 천막에 가려진 성화들

저는 방문했을 당시 아쉽게도 보수작업으로 인해서 사원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2층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데이시스와 엔리코 단돌로의 무덤 등을 보지 못한 것이 터키 여행에서 몇 없는 한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저에게 한 번 더 다녀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특이한 점으로 1층에는 예배를 드리는 제단의 위치가 사원의 전체적인 각과는 결이 틀린 모습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성당으로 설계된 만큼 제단의 위치가 메카 방향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슬람교의 규칙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건물이 만들어진 결과 예배당의 각이 다른게 보이시나요?

내부에는 엄청난 인파와 더불어 거룩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제단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듯 열심히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신학과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서 활동하며 내부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주기도 합니다. 영어도 정말 잘하고 친절한 친구들이니 모르는 것이 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물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왕이면 한 번 볼 때 제대로 둘러보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스탄불을 생각하면 가장 떠오르는 랜드마크이자 무려 150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견디면서 기독교와 이슬람 아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야소피아를 알아보았는데요, 저 역시도 원고를 쓰면서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에 언제 다시 찾아갈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터키 여행 글은 제 배너를 누르시면 제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테세큘 에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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