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미완성인 무슬림 히어로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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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뉴저지 주의 저지시티에 사는 무슬림 10대 소녀 ‘카말라 칸(이만 벨라니)’. 그녀는 열렬한 슈퍼 히어로 덕후로 특히 캡틴 마블을 향해 상상을 초월할 팬심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인 ‘브루노(매튜 린츠)’와 함께 어벤져스 행사인 어벤져 콘에 놀러 간 카말라는 캡틴 마블 코스프레 대회를 앞두고 외할머니한테 받은 팔찌인 ‘뱅글’에 의해 자신에게 초능력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이에 본격적으로 능력을 연습하며 슈퍼 히어로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한 카말라는 그녀에게 힘을 준 뱅글이 현실과 분리된 또 다른 차원인 ‘누어 디멘션’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집안사와 지구의 안전이 걸린 모험에 나선다.

디즈니+에서 공개된 <미즈 마블>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의 여섯 번째 드라마로, 평범한 고등학생이자 캡틴 마블의 열렬한 팬인 카말라 칸이 갑작스레 초능력을 얻어 히어로로 거듭나는 탄생기를 그린다. 사실 최근 MCU가 단기간에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다 보니, 해당 작품만의 독특함이 없다면 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미즈 마블>은 범람하는 MCU의 세계관 내에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가지의 고유한 특징을 다양한 장르적 재미로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즈 마블>은 갑작스럽게 히어로가 된 고등학생 카말라 칸의 이야기를 통해 1화에서 두드러지듯이 하이틴 드라마의 재미를 준다. 다음으로는 다른 히어로들과 겹치지 않는 특성인 파키스탄계 이민자 출신의 히어로라는 특징이 있다. 이는 뻔한 하이틴 드라마의 구도를 신선하게 포장해 줄 뿐만 아니라, 4화와 5화에서 역사드라마의 특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증조할머니의 유물인 ‘뱅글’의 힘과 관련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있다. 이는 슈퍼히어로 장르 안에서도 MCU만이 줄 수 있는, 확장되어가는 세계관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준다. 그런데 세 장르의 특징이 한 데 뭉치는 순간 <미즈 마블>은 두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6개의 에피소드라는 분량으로 인해 각 장르 안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내지 못하며, 이에 더해 필요한 만큼 깊이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못한 결과 장르적 쾌감도 퇴색된다.


<미즈 마블>에서 가장 먼저 부각되는 특색은 하이틴 드라마다. 특히 ‘상상력 소녀’라는 1화의 부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이틴 장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발달하고 또 불안해하는 십 대들의 사춘기를 그려낸다. 히어로 영화 중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고등학생에 불과한 피터 파커가 거미에게 물려 엄청난 근력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는 것은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어야 하는 신체적 변화를 상징한다. 또 그러한 변화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고단함이 함축되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사춘기에 겪어야 하는 모든 변화와 그 당시에는 좀처럼 이겨내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변화의 무게감까지 담아내고 있다. 결코 빠질 수 없는 청춘 로맨스도.

새로운 히어로 미즈 마블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가 신체적 변화에 의한 삶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묘사한다면, <미즈 마블>에서는 정신적 변화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카말라가 꿈꾸던 초능력이 그녀에게 발현되는 사건은 사춘기 청소년의 상상이 현실이 될 때 가능해지는 변화에 대한 비유이고, 캡틴 마블의 팬인 그녀의 모습은 대상이 아이돌 그룹이 아닌 슈퍼히어로일 뿐 현실성을 더해준다. 또한 카말라의 친구인 브루노가 꿈꾸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게 된 것 역시 이 하이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하이틴 장르의 매력은 탁월한 연출 기법 덕분에 더욱 빛난다.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녀에게 캡틴 마블과 새로운 초능력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며, 화면을 순간적으로 180도로 전환시키는 방식의 연출법은 카말라의 내면 속 환상과 덜 흥미로운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잘 전달하면서 카말라 칸이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소개한다.


그다음으로 <미즈 마블>은 그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문화적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히 미국 사회 내의 무슬림과 서남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일단 파키스탄 전통 음식과 의상, 그리고 기도를 하기 전에 내는 일종의 외침인 ‘아잔 혹은 아단(أَذَان/ʾaḏān)’을 현대적으로 편곡한 ost는 이전까지의 MCU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블랙 팬서>가 아프리카 지역의 리듬감을 살려낸 ost로 찬사를 받은 것과 같다. 이는 주류 문화에서 소외되어 왔던 문화적 특성이 수용되고 조화를 이룰 때 사회적 차원에서 다양성이라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시청각적으로 매끄럽게 전달한다. 이처럼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이며 비주류인 문화적 배경을 중심에 놓은 결과, 드라마는 무슬림들의 ‘소외감’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특히 소외감은 이슬람교와 무슬림들을 향한 선입견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무슬림과 외부인의 일상이 충돌하며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편견을 보여준다. 알려지지 않은 히어로를 추적하는 ‘대미지 컨트롤’ 요원들이 강압적으로 모스크를 수색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에 모스크의 이맘은 자신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고 오히려 요원들이 신발을 벗어야 하는 모스크의 규정을 먼저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 쿠란의 가르침 따위는 필요 없다는 대미지 컨트롤 요원에게 자신이 인용한 문구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것이었다고도 응수한다. 카말라의 절친인 ‘나키아(야스민 플레처)’가 히잡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흔히 히잡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차별의 상징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나키아처럼 서방에 사는 여성 무슬림에게 히잡은 자신의 민족, 문화,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주류에서 소외되어 평 면화되었던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적 특성의 공존과 조화를 위해서는 비주류로 인식되던 특정 공동체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은 미즈 마블이라는 히어로만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그녀의 능력이 평번한 인간들의 눈에, 이 세계의 주류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힘인 ‘누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는 그녀가 존재 자체로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사이의 가교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녀는 직접적으로는 파키스탄계 이민자, 더 넓게는 미국 내 무슬림, 보다 확장시켜서는 <미즈 마블>을 보는 모든 소외된 이들과 비쥬류들을 대변하는 히어로나 다름없다. 심지어 카말라와 친구인 브루노가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외감이라는 테마는 하이틴 드라마적 요소와도 잘 어우러진다. 이처럼 여러 장르적 특성을 하나의 주제 안에, 미즈 마블이라는 히어로의 정체성 하에 묶어내는 방식은 이 히어로의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만 <미즈 마블>의 매력은 근래 공개되는 마블 작품들이 모두 공유하는 단점으로 인해 목표한 만큼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한다. 세계관 확장 혹은 확립을 위한 요소들이 난립한 결과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와 재미를 깎아 버리기 때문이다. 카말라가 유전적으로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등장한 핵심 소재인 팔찌 ‘뱅글’에 주목해야 한다. 쿠키 영상에서 의도치 않은 사건을 일으킨 것이나 5화에서 카말라가 과거로 이동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뱅글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가능케 하기에 앞으로의 멀티버스 사가를 이끌 핵심적인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계의 물건이 아무도 모르는 이유로 지구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등장한 ‘텐 링즈’와의 공통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다른 마블 작품들과 연계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점은 일견 <미즈 마블>의 매력 포인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학교와 가족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고등학생의 고충과 미국 사회 속 파키스탄 이민자 혹은 무슬림들의 아픔을 보여주느라 많은 분량을 할애한 상황에서 세계관의 확장까지 시도한 결과 자연히 드라마의 서사적 완결성이나 개연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드라마가 인도-파키스탄 분열과 관련된 논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실 인도-파키스탄 분할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영리하게 활용할 경우 짧은 순간에 카말라의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MCU의 무대를 공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확장시키기에 적합한 소재일 수 있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문나이트>처럼 카말라가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진실을 찾아나가며 영웅으로 각성해 나가는 모습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즈 마블>은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요구되는 미묘한 균형을 잡지 못했다. 4화에서 카말라의 할머니는 자신이 파키스탄과 인도 양쪽에 모두 소속감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영국인들이 만든 국경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될 당시 파키스탄이 먼저 인도로부터 독립과 분리를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언급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백인 중심적인 시각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힌두교도와 무슬림을 차별한 영국의 식민통치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열을 낳았다고 이해한다면 카말라의 할머니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전달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드라마는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당시 사람들이 겪었을 혼란만 배경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예민한 역사적 사안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었고, 논란이 발생했다. 이는 세계관 확장 대신 보다 세밀한 사건 묘사를 통해 카말라 본인과 과거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쉬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이에 더해 부가적인 문제들도 생겨난다. 이야기의 키를 쥔 것처럼 보이던 ‘레드 대거즈’라는 단체는 MCU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해준 이후로 분량과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이 봉합되는 마지막 회의 전개 역시 지나치게 빠르다. 액션의 비중이 지나치게 적은 것도 문제다. 물론 애초에 하이틴 드라마로 출발하였고, 첫 작품이기에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파이더맨도 하이틴 영화에서 나름의 규모와 퀄리티로 무장한 액션씬을 선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연히 히어로물인 <미즈 마블>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미즈 마블>은 제목과 달리 아이러니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카말라라는 이름의 어원인 ‘카말’은 아랍어로 ‘완벽’을 뜻하며,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드어로는 ‘놀라움’이라는 의미다. 이는 카말라의 히어로 이름이 미즈 마블(marvel)로 정해지는 이유다. 다만 그녀의 탄생기인 <미즈 마블>이 아쉽게도 아직 완전치 않고 놀라기에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드라마는 제목과 내용 사이에서 모순된 측면이 존재한다. 과연 서로 다른 두 마블, 캡틴 마블과 미즈 마블이 만날 <더 마블스>에서는 보다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 섞인 채 기다려봐야 알 듯싶다.


P(Poor, 형편없음)

무슬림 소녀의 상상이 현실이 될 때. 그런데 상상이 너무 장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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