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경이, BMW M3 C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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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이 도로구간은 거의 쓰이지 않아 고요했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가하게 윈드실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아스팔트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973 배트모빌의 실내에는 재깍거리는 시계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때 날카로운 저음이 고요를 꿰뚫고 갑자기 솟아올랐다. M3 CSL 한 대가 맞은편 차선의 후미에서 불쑥 나타나 속도를 늦추며 다가왔다. 우리 자매지 <C&SC>의 그레그 맥레먼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하늘에 울려퍼지는 엔진 사운드,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유리에 반사됐다. 휙 지나갔던 실버 그레이가 돌아와 멈췄다. 그러자 두 대의 쿠페 스포트 라이트웨이트가 나란히 섰다.

E46 BMW 계열의 마니아라고 고백한 맥레먼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징표였다. 하지만 이날 개인적인 향수를 들먹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세대를 이어가는 시리즈의 상대적인 성능이 문제였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2세대 덕분에 더 좋은 3세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밝히기로 했다. ‘CSL’ 배지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어도 M3 시리즈와 오리지널 BMW E30의 후계차에는 쓸 만한 이론이었다.

E9의 상어 주둥이 옆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셸의 버킷시트와 림이 가느다랗고 아름다운 휠

M3 제1세대는 도로를 달리는 경주차였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노멕스 부츠를 신은 드라이버에게 성스러운 존재다. 그러나 모든 고성능 메이커가 그렇듯 BMW는 질적으로 개선하면서 M3의 매력을 확대하기를 바랐다. 그때 이미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조짐이 보였다. 컨버터블 E30 M3은 소프트톱의 헛된 이름으로 아름다운 섀시를 망쳤다. 하지만 잘 팔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부 고객들은 325i 스포트의 매끈한 기질을 더 좋아했다.

1992 E36 M3은 더 강력하면서도 운전하기는 더 쉬웠다. 기통 두 개가 늘어나 세련되어졌다. 하지만 덩치가 크고 더 무거웠으며, 이전보다 초점이 흐렸다. 아울러 E30과는 달리 승부욕이 모자랐다.

E36은 이상적인 선배에 비해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1995년 폭넓은 개선을 통해 성능을 높이고 무게를 줄이며 뛰어난 상호작용을 노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리지널의 매혹적인 심장과 감각이 부족했다. 이점은 특별히 우려할 만한 대목이었다. 당시 독일 고성능 4인승 세계에서 군비경쟁이 임박한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1994년 아우디는 터브를 뒤흔드는 315마력 RS2를 내놨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는 고속형 190 대신 276마력 C36 AMG를 앞세웠다. 뿐만 아니라 WRC에서 위력을 떨치던 스바루가 네바퀴굴림 WRC 호몰로게이션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했다.

2000년에 들어서 E46 M3이 등장해 제2세대의 단점을 바로잡았고, 고객들은 M3의 로드카 역할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골수파들은 여전히 거룩한 경주차인 오리지널에의 향수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3년 E46 M3의 중년에 게르하르트 리히터(BMW M 담당 부사장)가 앞 윙의 환기구 약속을 CSL로 성취해냈다. CSL은 대담한 가격과 파워를 갖춘 경량 트랙데이 M3. 군살을 완전히 덜어내고 자동차계의 또 다른 걸작 포르쉐 911과의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이때 약간 놀란 매스컴은 대단히 존경받던 오리지널을 들먹이는 걸 잊었다.

화려한 공력장비의 3153cc 배트모빌도 장차 나올 M30 엔진의 경주용 버전에 맞춰 더 긴 84mm 스트로크를 받아들였다. 유리가 시원한 목재트림 실내는 덜 스포티한 E9 쿠페와는 차이가 있었다. 등받이가 낮고 안락한 셸 버킷시트, 거대한 윙에 둘로 나눠진 후방시야, 위로 솟은 앞 윙 스트립이 두드러졌다.

대형 합금휠과 불쑥 나온 휠 아치가 E46의 공격적인 자세를 강화한다
한층 어두운 실내에 림이 굵은 스티어링

요헨 네어파쉬와 마르틴 브라운가르트가 배트모빌의 공기저항 감소, 안정성이 향상된 보디키트를 개발했다. 독일 통일 이전의 서독에서는 불법 장비였다. 때문에 쇼룸에서는 트렁크의 자루 속에 들어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비판적인 여론이 도끼로 장작 패듯 둘로 쫙 갈라졌다.

사실 배트모빌은 알피나의 영감을 받고 카뷰레터형 CSL로 시작한 전설의 종결자였다. 오리지널 1972 호몰로게이션 E9는 BMW 모터스포츠 창설 초기에 네어파쉬가 개발했다. 그리고 빌헬름 호프마이스터의 뉴 식스 CS 디자인이 품격을 한층 높였다. 그런데 최종 진화형은 우아한 품위를 버리고 오로지 전투태세 완비에 열중했다. 유럽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철천지 원수 포드 카프리 RS3100을 꺾기 위해서였다.

놀랍도록 운전하기 쉬운 쿠페의 승차감은 나긋하고, 운전 위치는 더할 나위 없었다. 적극적인 ZF-게머 기어박스는 멋지게 균형을 잡았다(다만 덩치가 작은 E9보다 기어가 좀 더 높았다). 3000rpm 이하에서 싱글캠 M30 엔진은 그냥 목청을 시험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멜로디가 윤택하고 즐거웠다. 회전대가 올라갈수록 음정, 강약과 음질이 달라졌다. 바늘이 회전계를 따라 돌아가자 등골이 오싹한 아우성이 터졌다. 4200rpm에서 최대토크 29.1kg·m, 5600rpm에서 최고출력 206마력에 도달했다. 그리고 여유 있게 6400rpm의 레드라인을 돌파했다.

배트모빌은 결코 엔진 피로 증세를 드러내지 않았다. 안티롤 바가 없지만 향상된 스프링, 가스 댐퍼와 25% 잠김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을 갖춰 롤링이 가능했고, 그 과정에 스티어링의 비중이 약간 올라갔다. 방향 전환은 잽싸고, 직진 안정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직선코스에서 너무나 가벼워 운전감각이 거의 없었으나 코너에서 감각이 되살아났다. 게다가 마음대로 오버스티어를 일으킬 수 있었다.

공통적인 DNA가 뚜렷하다

배트모빌을 나와 M3 CSL에 올랐다. S54 B32HP를 담은 CSL은 레이스로 단련된 동료들과는 아주 다른 짐승이었다.

E9 CSL의 겉모습은 갑옷을 입은 잔다르크와 같다. 격전에 대비한 절묘한 중성적 스타일을 과시했다. 그에 비해 에릭 고플렌/크리스 뱅글이 디자인한 E46 쿠페는 한스-브루노 슈트라케의 관능적 곡선으로 단장했다. 따라서 수영복을 입은 하이디 클룸과 비슷했다.

실내에 들어가 보면 E9는 플라스틱 포장 아래 경량구조를 숨기려 기를 썼다. 반면 E46은 열망하는 레이서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열을 올렸고, BMW가 21세기에 F1에 진출하려는 유사 모터스포츠 의상을 암시했다. 가장 두드러진 장비에는 굵직한 알칸타라 스티어링, 패들기어, 노출된 볼트헤드, 얇고 높은 등받이의 앞쪽 버킷시트, 카본파이버 센터콘솔과 도어카드가 들어 있었다. 운전 위치는 탁월했으나 콕핏은 더 딱딱했고, 한층 어두웠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자동화 클러치 SMG Ⅱ 박스의 뭉툭한 센터 기어스틱이 돋보였다.

저속으로 잠시 몰아보자 자동 기어박스가 따분하게 고집을 부렸다. 승차감은 딱딱해 플라이-바이-와이어 스로틀이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다는 걸 과장되게 알려줬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잠시 생각해봤다. 가능한 대로 전자기기를 해제하기로 했다.

트랙션 컨트롤? 그런 건 필요 없었다. 기어변환 모드는? 수동식. 기어변환 속도는? SMG의 변환속도는 0.08초. 이래도 트집을 잡아? 스포트 버튼은? 그냥 두면 무례하지.

둘 다 우렁찬 자연흡기 6기통을 갖췄다.

중독성 높은 사운드와 스피드가 올라가자 이전에 이 차를 시승한 경험이 고마웠다. 그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도로가 아니라 트랙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기술면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카본파이버 루프, 개조된 플라스틱 트렁크리드, 글라스파이버 뒤 범퍼 및 뒤 벌크헤드, 더 얇은 유리, 미쉐린 파일럿 컵 스포트 타이어를 신은 경량합금 휠이 눈에 띄었다. 카본파이버 앞 범퍼가 앞서 말한 트렁크리드 및 뒤 디퓨저와 합세해 공력성능을 끌어올렸다.

트랙에 나가자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나 생생하고 강렬했던 스릴, 몇 년 전의 경험이 내 기억에 날카롭게 각인되어 뜨거운 감동으로 되살아났다.

다시 손질한 S54 B32HP 엔진은 톤당 최고 111마력. 레이싱 라이선스를 가진 드라이버에게 넘겨주면 시속 300km를 뛰어넘는 획기적 파워플랜트였다. 그 어떤 6기통도 레드라인으로 치닫는 CSL 엔진의 절규를 따를 수 없다. 다만 중회전대 파워 감각에서 M30에 못 미쳤고, 최대토크 37.7kg·m은 훨씬 높은 4900rpm에서 터졌다. 아울러 더 오래된 엔진의 원숙한 목청을 따르지 못했다. 무언가 다른, 더 한층 강렬한 금속성 포효가 심금을 울렸다.

E46 스타일은 날씬한 E9 옆에서 한층 투박해 보인다

문자 그대로 회전계는 불타올랐다. 7500rpm의 오렌지 램프를 지나 레드존으로 솟아올랐다. 8250rpm에서 마침내 360마력을 돌파했다. S54의 파워는 통쾌하고도 광적으로 뻗어나갔다. 페달을 건드리거나 레버(패들은 스티어링과 함께 돌아간다)를 당기거나 변속은 지체 없이 순간적이었다. 액셀을 꽉 밟고 있으면 가장 공격적인 VANOS 가변밸브 타이밍의 불협화음을 즐길 수 있었다. 들쭉날쭉한 아우성은 대구경 배기관과 경량 램 효과 에어박스의 목청싸움이었다. 들어도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장쾌한 절규였다. 세 자리 숫자의 스피드 레이스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브레이크를 걸었다. 피칭이 거의 없었지만, 무게 이동이 있을 때 265/30 ZR19 뒤 타이어가 엉덩이를 흔들며 꿈틀했다. 기어박스가 일을 마쳤고, 배기관은 마지막 한숨을 토했다. CSL은 스티어링 랙의 속도를 높였고, 무게배분을 51:49로 개선했다(기본형 M3은 52:48이었다).

CSL은 일찍부터 능란하게 밸런스를 잡았다. 스티어링은 약간 감각이 무뎠으나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한편 카리스마 있는 섀시는 그립과 요각을 자유자재로 요리했다. 코너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코너 출구에서 거의 롤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기억은 수정처럼 투명했다.

사실 CSL은 M 디비전 모델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갖췄다. 독일 모터스포츠 성지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퍼 랩타임 8분을 기록했고, 주펜하우젠의 과대평가된 6기통 비틀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도로의 어떤 굴곡에도 아랑곳없이 해답을 찾아냈다. 과연 오리지널의 후계가 될 자격이 있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다!

이들 두 6기통 쿠페는 서로 반대편에서 CSL의 이상에 접근했다. 여기에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레이스에서 태어났으나 승차감이 매끈한 E9는 트랙에서 단련된 로드카 E46보다 더 세련된 로드카로 탈바꿈했다. 결국 한층 상냥한 3.0 CSL이 불을 뿜는 M3 CSL을 제쳤다. 배트모빌은 수없이 드라이버를 끌어들였고, 더 큰 보상을 줬으며, 드라이버를 매혹했다. 물론 그 성능은 양적으로 E46에 미치지 못한다. 분명한 건 어느 속도에서나 즐겁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글 · 사이먼 찰스워스(Simon Charlesworth)
사진 · 토니 베이커(Tony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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