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허영만도 인정한 익산 시장통 ‘비빔밥’의 비밀

전주만 콩나물로 이름난 줄 알았더니, 윗동네 익산도 만만치가 않다. 익산에서는 콩나물을 물에도 담가 먹고 곱창에도 넣어 먹고 육회랑도 비벼 먹는다. 막 봄이 움터오던 4월의 어느 날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고소한 콩나물 냄새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봄바람 타고 온 꽃향기만큼이나 외지인의 마음을 흔든 건 ‘콩나물 팍팍 들어간’ 익산 별미 3대장이었다. 메뉴는 콩나물국밥, 육회비빔밥, 낙지볶음이다. 별책부록 맥주 맛집 ‘엘베강’도 넣었다.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깔린 ‘역전 할머니 맥주’가 익산역 앞 허름하고 오래된 맥주집 엘베강에서 시작했다.

저녁 7시

“사장님, 콩나물 팍팍 넣어주세요.”

@동서네낙지 본점

익산에서 시작해 전주·완주 등으로 퍼진 소곱창낙지볶음 집이다. 2007년 정귀달, 정옥선 자매가 문을 연 동서네낙지 대표 메뉴는 소곱창낙지볶음. 고추장과 양조간장, 오징어 엑기스를 혼합해 만든 특제 소스에 낙지와 소곱창, 콩나물 등을 넣고 비벼 먹는 요리다. KTX 익산역 개통을 맞아 익산시가 꼽은 ‘익산 맛집 20개소’에 들기도 했다.

딱히 기대가 없었다. 나는 부스러기(곱을 이렇게 부른다)가 후두두 쏟아지는 곱창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는 사람이다. 마지 못해 곱창전골을 먹으러 가면 우동 사리만 건져 먹는다. 기대를 너무 안 해서였을까. 소 곱창과 낙지의 만남은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다. 시뻘건 양념에 곱이 풀어지면서 중화제 같은 역할을 했고 전체적으로 국물이 꾸덕꾸덕해지면서 깊은 맛을 냈다. 여기에 금상첨화는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 질겅질겅 부드러운 곱창과 낙지의 식감에 기분 좋은 변주를 준다.

곱창·떡·물만두·낙지 등 다양한 사리를 추가할 수 있는데 소곱창낙지볶음에 공식처럼 따라가는 사리는 바로 대패 삼겹살. 메뉴판에 없지만 콩나물도 추가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먹고 나면 우동 사리를 비벼 먹고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면 전주 말고 익산에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 거다

저녁 8시 30분

“얼음 생맥주, 오징어입 주세요.”

@OB엘베강

1982년 김칠선 할머니가 익산역 근처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가게 문을 연 것이 전설의 시작이었다. 할머니는 결국 딸을 찾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퍼지면서 익산 토박이라면 OB엘베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OB엘베강은 전국으로 퍼진 프랜차이즈 맥주집 ‘역전할머니맥주’의 전신이다. 건어물 업체에서 일하면서 ‘오징어입’을 납품하던 소종근 대표가 OB엘베강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인수하면서 ‘역전할머니맥주’를 런칭했다.

김칠선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얼음 생맥주가 대표 메뉴다. 몇 년 전 신사동에서 슬러시 맥주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다. ‘신문물’이라며 너도나도 줄 서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살얼음 거품을 소프트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귀엽게 얹어주는 신사동의 맥주랑은 비주얼이 달랐다. 일반 호프집에서 주는 잔에 거품이 적당히 올려져 있다. 꽝꽝 언 맥주잔이야 다른 호프집에서도 흔하지만 잔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운데 얼음 기둥 같은 것이 있다. 거의 슬러시다. 무엇보다 가격이 엄청 착하다. 300cc 2000원, 500cc 3000원. 옆 편의점에서 에비앙 500㎖가 1900원에 팔고 있으니, 거짓말 약간 보태 익산에서는 맥주가 생수보다 싸다고 말하고 싶다. 오징어 입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버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안주가 될 줄이야.

오전 9시

“내 인생 최고의 콩나물국밥”

@일해옥

이번 익산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 ‘일해옥’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익산을 다시 찾는다면 아마 일해옥 콩나물국밥을 먹기 위해서일 것 같다. 역시나 기대를 안 했다. 평소 아침 밥을 안 먹는다. 그래서 출장에서 아침 식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전날 술을 먹은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다. 어제 저녁은 곱창 낙지볶음에 일 잔, 엘베강에서 오징어입에 일 잔, 부지런히 마셨다. 해장으로는 콩나물국밥만 한 것이 없지. 반갑게 일해옥으로 향했다.

깔끔해 보이는 외관, 단독 건물을 쓴다. 가게 앞 노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여는 시간 오전 5시 30분~닫는 시간 오후 2시 30분. 하루에 정해진 양만 팔고 가게 문을 닫아버리는 시스템. 찐 맛집의 향기가 문 밖에서부터 풍긴다. 메뉴판을 보니 더 신뢰가 간다. 메뉴는 달랑 두 개. 콩나물국밥과 모주만 판다. 머릿수대로 국밥을 주문했다. 밑반찬은 멀건 깍두기와 고추 장아찌. 깍두기는 치킨 무같이 새콤달콤상콤하고 고추 장아찌는 첫맛은 달큼한데 끝 맛은 맵싸하다. 곧 국밥이 나왔다. 여자랑 남자 밥 양을 달리 준다. 밥을 넉넉히 먹고 싶은 여자라면 사장님께 미리 말하는 것이 좋겠다. 멀건 국물에 달걀 노른자가 동동 떠 있고 흰자는 부드럽게 풀어진 모양이다. 김 부스러기와 채 썬 파 그리고 고춧가루가 올라가 있는 단출한 모습이다. 처음엔 밥을 따로 주는 줄 알았다. 양념을 풀고 헤집고 나니 밥알이 보였다.

국밥은 무조건 ‘토렴’이다. 그런데 요즘은 토렴을 하는 집이 별로 없다. 손목을 써서 국물을 덜어내고 덜어내는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가게 사장님들이 토렴을 안 하려고 한단다. 토렴한 국밥과 공기밥을 말아 먹는 건 분명히 다르다. 밥을 말면 전분 때문에 국물이 탁해진다. 밥이 국을 망쳐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 국밥에서 밥은 거들 뿐, 국 맛을 해치면 안 된다. 하지만 토렴을 하면 밥알 하나하나에 국물이 코팅돼 밥과 국이 진정으로 한데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일해옥도 토렴을 한다.

​한 숟갈마다 감탄 1회 발사. 그렇게 뚝배기를 다 비우고 주방으로 가서 사장님의 토렴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솥은 두 개다. 한 솥은 육수가 끓고 있다. 깔끔한 국물맛의 비결은 통영 멸치다. 오로지 멸치만 한 망 가득 넣고 육수를 낸다. 다른 한 솥에 있는 국물로 토렴을 한다. 뚝배기에 밥푸고 삶은 콩나물을 얹은 다음 달걀을 깨서 넣는다. 그러고는 표주박으로 육수 붓기를 반복하면서 토렴을 한다. 흰자는 토렴한 국물에 녹아버린 듯 풀어지고 노른자는 탱글탱글하게 남아 있다. 서너 번 토렴한 다음 김 가루와 파, 고춧가루를 얹으면 완성. 전주 3대 콩나물 국밥집을 전부 가봤다. 하지만 최고는 익산에 있었다. 이 완벽한 해장 국밥 한 그릇에 익산의 술꾼들이 부러워졌다.

낮 12시

“백종원, 허영만도 인정”

@시장비빔밥

익산은 육회비빔밥이 유명하다. 황등면에 오래된 맛집들이 모여있는데 이날 갔던 곳은 풍물시장 근처에 있는 시장비빔밥이다. 가건물같은 단출한 가게에 훈장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다. 방송 ‘백종원 3대천왕’ ‘허영만 백반기행’에 나온 것을 알리는 문짝만 한 스티커였다. 12시 정도 갔는데 손님 대여섯이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전율은 빨라 보였다. 육회비빔밥(보통/곱배기)와 선지순대국밥, 모듬순대, 공기밥 식사 메뉴랑 소주·맥주·막걸리·음료수 등을 판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30분에서 오후 2시. 딱 점심 장사만 하는 집이다.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 상을 자세히 살펴본다. 현지인 같은 사람들은 국밥을 먹고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육회비빔밥을 시켰다. 동행인과 상의해 4가지 메뉴를 다 시켜보기로 한다. 가게 한 켠 칸막이도 없이 전부 노출된 주방의 중심은 바로 솥이다. 선짓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이 국물로 밥을 토렴한다. 토렴한 밥에 콩나물과 애호박·무채 등 채소와 양념한 육회를 올리면 비빔밥 완성이다. 이렇게 토렴해 밥을 다 비빈 다음 손님상에 내는 것이 ‘황등식 비빈밥’의 특징이다. 메뉴와 가게 이름엔 전부 ‘비빔밥’이라고 적었지만 밥이 비벼서 나온다 하여 ‘비빈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등식 비빈밥은 이미 몇 번 먹어봤던 터라 예상 가능한 맛이었다. 놀랐던 건 함께 나오는 선짓국. 선짓국을 못 먹는데 이상하게 이 집 국물은 계속 당겼다. 더러는 후추 맛이 강하다고 하는데 국물 자체는 담백한 것이 간이 강한 비빔밥과 먹기에는 딱 조화로웠다. 옆자리 순대국밥을 보니 부속 고기와 순대, 선지가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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